응급실 뺑뺑이가 심화하는 상황에서 정부가 별다른 대책을 내놓고 있지 않고 있어 우려가 커지고 있다.

[메디칼업저버 박선재 기자] 정부 생각과는 다르게 의료 붕괴가 현실화하는 모습이다.

응급실 뺑뺑이로 제대로 제때 치료받지 못해 목숨을 잃는 환자들이 증가하고 있고, 상급종합병원들은 환자 진료를 줄이거나 어려운 수술은 꺼리는 상황이 됐다.

게다가 지난 2월부터 이 사태가 계속되면서 의료기기 등 관련 산업들도 타격을 받고 있다.

"전공의들 부재로 필요한 검사도 제대로 못해"

전공의들이 병원을 비우면서 상급종합병원들은 환자 수를 줄이거나, 수술 건수를 줄이는 방향으로 버티기에 나섰다.

서울 소재 모 대학병원 A 교수는 "통상 전공의들이 기본 검사를 하고, 그 결과를 갖고 교수가 환자 면담을 통해 진단하는데, 그 과정이 모두 틀어졌다"며 "그런데 전공의들이 없어 검사 등에 차질이 생겼고, 검사도 최소한으로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전공의와 함께 담당하던 일을 교수 혼자 떠맡다 보니 오진을 낼 확률도 증가하고, 결국 환자를 적게 볼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이러한 경향은 실제 수치로 나타나고 있다.

지난달 29일 대한간이식학회가 의정 갈등 이후 국내 생체 간이식술 현황에 대해 발표했다.

학회 김석환 정보위원장(충남대병원 외과 교수)은 서울대병원은 물론 전남대병원 등에서 간이식수술 건수가 줄었다고 발표했다.

김 정보위원장은 "지난해 3~6월 서울대병원에서 진행된 생체 간이식 수술 건수는 총 34건이었으나 올해 같은 기간 16건으로 절반 이하로 줄었다"며 ""전남대병원도 지난해 (같은 기간) 4건이었지만 현재 0건으로 완전히 중단됐다"고 호소했다.

학회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의정 갈등이 시작된 지난 2월부터 6월까지 진행된 생체 간이식 수술 횟수는 총 330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451건 대비 27%가량 줄었다.

배후 진료 무너졌는데 응급실 얘기만...

의사들은 정부가 의료 현장을 너무 모른다고 입을 모은다.

A 교수는 "응급실에 환자를 수용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 이를 치료할 배후 진료가 받쳐줄 수 있느냐가 더 핵심"이라며 "응급 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내외산소 등 필수과가 없는데 응급실만 운영하면 무슨 소용"이냐고 질타했다.

간암 수술을 하는 B 교수도 같은 의견을 보였다.

내외산소가 탄탄하지 않으면 난이도 있는 수술을 하기 어렵다고 정부를 비판했다.

B 교수는 "수술 하기 전 고혈압이나 당뇨병 등 기본적인 체크는 물론 수술 이후 환자에게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이를 뒷받침할 내외산소가 있어야 한다"며 "전공의들이 떠난 이후 협진이 어려워졌고, 그래서 어려운 수술을 힘들게 됐다"고 말했다.

의료기기 업체들은 경영난으로 영업조직 개편

의료기기 업체들이 받은 타격도 심각하다.

의료기기 업계 고위 관계자는 이번 의료 공백이 장기화하면서 매출의 30~70%가 감소했다고 말했다.

그는 "수술 건수 감소와 지연, 외래 감소 등으로 의료기기 공급에 어려움이 커지고 있다"며 "병원 경영이 어렵다 보니 대금 결제가 지연되고, 영세한 의료기기 업체들은 인력 구조조정에 들어가거나, 영업 조직을 개편하고 있다. 또 매출을 내지 못하는 직원들은 퇴사 처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의료기기 업체 직원도 상황은 마찬가지인 듯했다.

그는 "의료공백 장기화로 병원들 수술 일정 연기 및 축소되면서 기존 매출이 감소하고, 신규 매출도 거의 발생하지 않고 있다"고 힘들어 했다.

또 "병원들이 비상경영을 하면서 영향을 받고 있고, 아직 버티고 있지만 더 장기화되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