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코리아뉴스 / 이충만] 일본 다이이찌 산쿄(Daiichi Sankyo)의 경구용 항응고제 ‘릭시아나’(Lixiana, 성분명: 에독사반·edoxaban)를 뛰어넘는 차세대 항응고제가 국내 상륙을 위한 절차에 들어갔다. 스위스계 제약사 노바티스(Novartis)의 ‘아베실라맙’(abecilamab, 코드명: MAA868)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29일 ‘아베실라맙’에 대한 3상 임상시험계획(IND)을 승인했다. 시험은 경구 항응고요법에 부적합한 것으로 간주된 심방세동 고위험 환자를 대상으로 ‘아베실라맙’과 위약의 유효성 및 안전성을 평가하는 것이다.

‘아베실라맙’은 응고인자 IX(FIX)를 억제하는 항체 약물이다. 타깃인 FIX는 체내 응고 과정의 상위 단계에서 작용하는 물질로, FIX 억제 기전은 ‘릭시아나’ 대비 더욱 강력한 효과 및 안전성을 나타낼 것으로 기대된다.

구체적으로, ‘릭시아나’는 비타민K 비의존성 경구용 항응고제(NOAC)다. 혈액 내 응고인자 Xa(FXa)에 선택적으로 작용하여 혈전 생성을 저해하는 기전이다.

‘릭시아나’를 비롯한 NOAC는 기존의 항응고제였던 와파린 제제가 혈액 응고에 관여하는 비타민K에 선택적으로 작용하여 혈전 생성을 저해하는 방식을 개선한 약물이다. 즉, 비타민K에 비의존적으로 작용하는 게 특징이다. 덕분에 비타민K 섭취와 무관하게 투약할 수 있다.

문제는 NOAC 역시 출혈 위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다. FXa는 응고 과정의 후기 단계에서 작용하는 인자인터라, 이때 FXa를 억제하면 이미 한창 진행 중인 응고 과정을 뚝 끊는 셈이어서 지혈도 함께 방해돼 출혈 위험이 커질 수밖에 없다.

FIX 억제제가 개발된 이유다. FIX는 세린 프로테아제라는 유형의 단백질로, FIX는 응고인자 X(FX)를 FXa라는 활성화된 형태로 전환되도록 촉진하는 역할을 한다. 쉽게 말해 FIX는 FXa를 생성하는 상위 경로의 응고 인자다.

FIX 억제제는 FIX에 선택적으로 작용하여 응고 작용을 저해하는 기전이다. 특히 NOAC와 달리 응고 과정의 초기 단계에서 이를 억제해 혈전 생성을 근본적으로 차단하는 만큼, 과도한 응고만 조심스럽게 억제하여 혈전 생성을 막을 수 있다.

업계는 이에따라 지난 2010년대부터 NOAC보다 더욱 향상된 효능과 안정성을 제공할 수 있는 차세대 항응고제로서 FIX 억제제의 개발을 추진해왔다.

하지만 FIX는 FXa 대비 구조가 더 큰 단백질로, 저분자 합성 의약품으로는 억제하기 어렵다. 이 유형은 경구 복용 후 간에서 대사되고 전신 순환을 거쳐 혈류에 도달하는데, 이 과정에서 약물의 생체 이용률이 급격히 감소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FIX 억제제는 당초 NOAC을 대체하기 위해 개발된 약물이므로, 기업들은 환자의 선호도를 고려하여 저분자 합성 의약품으로 개발을 시도하고 있다. 현재 개발 중인 FIX 억제제 20개 중 저분자 기반 약물은 16개다.

노바티스의 ‘아베실라맙’은 이와 다른 접근 방식을 취하고 있다. ‘아베실라맙’은 경구용 저분자 합성 의약품이 아닌 피하주사용 항체 약물이다. 비록 투약이 불편한 주사제일지라도 그 대신 더 뛰어난 효과를 통해 경쟁력을 확보하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현재 발표된 임상 시험의 데이터를 살펴보면, ‘아베실라맙’을 비롯한 항체 기반 FIX 억제제는 저분자 기반 FIX 억제제보다 더욱 우수한 항응고 효과를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아베실라맙’은 NOAC보다 출혈 위험을 낮추면서도 효과적인 항응고 작용을 기대할 수 있는 차세대 항응고제가 될 가능성이 높다.

한편, 이 약물은 본래 미국의 중소 바이오 기업인 안토스 테라퓨틱스(Anthos Therapeutics)가 발굴한 후보물질이다. 이 회사는 지난 2021년 2월 미국을 시작으로 총 22개국에서 ‘아베실라맙’의 임상을 실시했다.

아시아 지역으로 한정하면 일본, 중국, 대만에서 3상 임상을 진행하며 상용화 준비에 한창이었다. 하지만 유독 한국에서는 ‘아베실라맙’ 관련 임상 소식이 들리지 않았다.

이러한 가운데 노바티스는 올해 2월, 21억 5000만 달러(한화 약 3조 원) 규모에 안토스 테라퓨틱스를 인수했다. 이후 ‘아베실라맙’의 국내 임상이 본격적으로 착수된 점을 고려하면, 해당 인수가 ‘아베실라맙’의 국내 도입 계획에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