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컬투데이=김미경 기자] 건강한사회를위한약사회가 수급 불안정 의약품 대응 정책 제안에 이어 신약의 고가화와 빨라진 인구 고령화에 대응하기 위한 의약품 가격 정책을 제안했다.

의약품의 가격은 시장에서 결정하는 일반 재화와 달리 건강보험공단·보건복지부와 제약회사의 약가 협상 및 고정된 계산법에 따라 정해진다.

특허 등 공급을 독점화하고 있는 제약회사가 생명이 위급한 환자 사이에서 정부가 약값을 대리해 협상하지만, 2000년대 이후로 제약산업의 금융화와 신약의 독점력이 강화되면서 최근 허가되는 의약품 가격은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건약은 한국 의약품 시장에서 고가 신약의 급격한 증가는 심각한 재정적 부담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건약에 따르면 2010년 연간 치료비용이 1000만원이 넘는 고가 의약품이 34품목에 불과했으나, 2021년에는 209개로 6.14배나 증가했으며, 같은 기간 약제비도 3884억원에서 1조6928억원으로 증가했다.

고가 의약품에 대응하기 위해 운영되는 위험분담제 적용 품목 역시 2021년 97개에서 3년이 지난 2025년 3월 기준 152개로 급증해 재정 부담이 더욱 가중되고 있다.

게다가 한국은 급속한 고령화로 전체 약제비 문제가 향후 사회 문제가 될 우려가 있다.

한국의 고령화는 OECD 국가 중 가장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는데, 2000년 고령화 사회 진입 후 단 18년 만인 2018년 고령사회에 진입했으며, 2023년 말에는 고령인구 비중이 20%에 도달했다.

이 때문에 약제비 지출도 급증하는 추세다.

건보공단 자료를 보면, 2023년 약제비 지출은 26조원으로, 2018년 18조원에 비해 5년간 50% 가까이 증가했다.

주요 국가들도 높은 약가를 통제하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은 메디케어 기반 약가 협상 제도를 도입하고, 참조 국가 최저가격을 기준으로 하겠다고 발표했다. 유럽연합은 의약품 개혁안을 통해 자료독점권 기간을 단축하고, 발레타 그룹을 결성해 공동 약가 협상을 모색하고 있다. 독일은 신약 협상 유예기간을 12개월에서 6개월로 단축하는 등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중이다.

이러한 상황을 고려해 건약은 네 가지의 의약품 가격 정책을 제안했다.

첫 번째는 신약의 가격을 통제하기 위해 경제성평가면제제도를 폐지하는 것이다.

건약은 “기존의 경제성평가면제제도는 신약의 실제 임상적 가치를 충분히 검증하지 못하고 있으며, 이 때문에 불필요하게 높은 약가를 초래하고 있다”며 “신약의 임상적 효과와 비용효과성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므로 건강보험 재정에 과도한 부담을 줄 우려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경제성평가면제제도를 폐지하고, 일시 유예제도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선급여 후 6개월~1년 이내 의료기술 평가 및 약가 협상을 하고, 유예기간 내에 신약이 효과가 없는 경우 약값의 상당 부분을 환급하는 효과 기반 환급제 도입을 이용한다면 신약의 접근성 향상과 재정 안정화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비싼 제네릭 난립을 막는 경쟁형 약가 제도의 도입이다.

건약에 따르면 한국의 제네릭 의약품 가격은 국제적으로 매우 높은 수준으로, 미국보다 3배 높다. 이는 제네릭 의약품 가격의 통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것으로, 그로 인해 제약기업들의 높은 마진을 보장해 주는 반면, 소비자에게는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 건약의 설명이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건약은 공공 입찰을 통한 생산 기업 수의 제한, 5년마다 제네릭 약가 재평가 제도 시행, 의사 처방의 일정 비율을 최저가 약 처방으로 의무화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세 번째는 의약품 독점권 남용 방지다.

한미 FTA 이후 도입된 허가 특허 연계 제도와 과도한 자료독점권 보장은 제약기업들이 부실하거나 사소한 특허를 통해 독점권을 연장하는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 때문에 제네릭 의약품의 시장 진입이 지연되고, 결과적으로 소비자들의 의약품 접근성과 선택권을 제한하는 것이다. 특히 개량형 신약에 대한 과도한 독점권 보호는 실질적인 혁신을 저해하고 있다는 것이 건약의 분석이다.

따라서 건약은 허가 특허 연계 제도 폐지, 자료독점권 제도 전면 개편, 부실 특허에 대한 사전 이의신청제도 도입, 특허권 제한 결정권을 특허청장에서 주무부 장관으로 변경, 국제적 가격협상을 위한 연대 모색 등을 제안했다.

건약은 끝으로 혁신혁 제약기업 인증제도 폐지를 주장했다.

현재의 혁신형 제약기업 인증제도는 원래 국내 제약산업 육성을 목적으로 도입됐으나, 실제로 오히려 약가 상승과 불공장한 시장 환경을 조성한다는 것이 건약의 주장이다.

건약은 특히 다국적 제약사들이 이 제도를 악용해 세금 감면 및 약가 가산 특혜를 누리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어, 제도의 본질적 목적을 훼손하고 있다고 봤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건약은 혁신형 제약기업 인증제도를 전면 폐지하고, 개발 약물의 특성에 맞는 재정지원 및 보건 안보 차원의 자국 생산시설 지원 정책으로 전환, 약가 가산 방식의 제약기업 지원 정책 폐지를 제안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