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코리아뉴스 / 이창용] 사람 몸안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케톤체’가 열대성 질병인 말라리아를 억제할 수 있다는 사실이 새롭게 밝혀졌다. 케톤체는 생체 내에서 물질대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때 생기는 아세톤 및 아세톤류의 산을 말한다.

국제학술지 ‘네이처 메타볼리즘(Nature Metabolism’에 최근 게재된 논문에 따르면, 단식, 운동, 또는 케톤 식이요법으로 생성되는 주요 케톤체인 β-하이드록시부티르산(β-hydroxybutyrate · β-OHB)이 말라리아 원충의 생장을 효과적으로 차단하고, 실험용 생쥐의 생존율을 극적으로 높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서 케톤 식이요법은 밥을 먹을 때 견과류, 올리브유 처럼 지방이 든 음식을 먹고 밥이나 빵, 과자 같이 탄수화물이 있는 음식을 줄이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하면 우리 몸은 탄수화물 대신 지방을 연료로 사용하게 되고, 이때 간에서 지방을 분해해 만들어지는 것이 바로 ‘케톤체’다.

말라리아 원충 성장, βOHB로 직접 억제

말라리아는 모기를 매개로 하는 감염병이다. 해마다 수억 명이 감염되고 수십만 명이 사망하는 전 세계 보건 문제다. 플라스모듐 팔시파룸(Plasmodium falciparum)은 가장 치명적인 말라리아 원충으로, 주로 아프리카 지역에서 높은 사망률을 유발한다. 이 원충의 생장 기작을 정확히 파악하고 이를 제어할 수 있는 치료법 개발은 오랜 연구 과제였다.

연구팀은 실험용 생쥐 모델을 대상으로 지방 함량이 높은 케톤식이를 2주간 제공한 뒤, 말라리아 원충(Plasmodium berghei ANKA 균주)을 감염시켜 그 영향을 분석했다.

그 결과, 20% 이상의 지방을 섭취한 생쥐들은 말라리아 원충에 감염됐음에도 혈중 원충 농도가 거의 관찰되지 않았다. 일반 사료를 먹인 대조군은 감염 후 10일 이내 모두 사망한 반면, 케톤 식이군은 감염 80일 후까지 생존율 100%를 유지했다.

이러한 결과는 단순한 식이조절만으로도 말라리아의 진행을 사실상 완전히 차단할 수 있다는 강력한 근거를 제시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번 연구에서 주목할 점은 주요 케톤체인 βOHB가 기존 항말라리아제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작용한다는 점이다. 일반적인 항말라리아제는 원충의 단백질 합성, DNA 복제, 혹은 소기관 기능을 표적으로 하지만, βOHB는 원충의 에너지 대사 경로에 직접 개입해 생장을 저해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연구팀은 “말라리아 원충에 βOHB를 처리한 결과, 미토콘드리아 대사와 관련된 NAD 수준이 유의하게 감소했으며, 이로 인해 에너지 대사 및 생장에 필요한 유전자들의 발현이 억제되는 현상을 관찰했다”며, “이러한 대사 억제가 원충 성장을 방해하는 핵심 기전일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여기서 NAD는 세포가 에너지를 만들 때 꼭 필요한 물질로, 일종의 ‘에너지 전달자’다.

자연에서 만들어지는 분자, 새로운 치료 가능성 열어

βOHB는 단식, 운동, 또는 케톤 식이요법 중 간에서 생성되는 대표적인 케톤체다. 신체는 탄수화물이 부족할 때 에너지원으로 지방을 분해하는데, βOHB는 이때 생성된다.

이번 연구는 이러한 자연 발생 대사물질이 병원체를 억제하는 능력까지 가질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이례적이고 중요한 발견으로 평가된다.

연구팀은 “βOHB는 이미 인체에 존재하는 물질이므로, 독성이나 부작용 측면에서도 기존 합성 약물보다 유리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후속 연구와 치료제 개발 가능성

항말라리아제에 대한 내성 문제가 점점 커지는 가운데, βOHB처럼 전혀 다른 작용 기전을 가진 물질은 치료 대안을 마련하는 데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연구팀은 “β-OHB 기반 대사 전략이 말라리아 치료의 새로운 방향이 될 수 있다”며, “하지만 임상 적용을 위해 추가적인 작용 기전 분석, 적정 용량 설정, 안전성 평가 등 후속 검증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연구는 인체의 식이 대사와 감염병 치료가 연결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사례다. 식이 상태에 따라 달라지는 물질이 병원체의 성장을 억제할 수 있다는 점에서 향후 영양, 면역, 감염병 연구의 교차 지점을 넓힐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중국 의과학원(CAMS)이 진행한 이번 연구는, 세계적 학술지 ‘Nature Metabolism’에 2025년 5월 23일자로 게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