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코리아뉴스 / 이창용] 인공지능(AI)을 활용해 자연에 없는 새로운 단백질을 설계하는 기술이 발전하면서도 바이오산업에도 큰 변화를 불러오고 있다. 단백질은 몸속에서 화학 반응을 돕고, 신호를 전달하는 등 생물의 몸을 구성하는 데 필요한 고분자 유기 물질이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이 1일 발간한 ‘2025 단백질 디자인 동향보고서’에 따르면, 과거에는 자연에 있는 단백질을 변형하는 방식이 주로 쓰였지만, 이제는 처음부터 새로운 단백질을 설계할 수 있게 됐다. 특히 2021년 구글 딥마인드가 개발한 ‘알파폴드2(AlphaFold2)’가 단백질 구조 예측 문제를 해결한 뒤, 연구는 예측 단계를 넘어 ‘설계’ 단계로까지 진화했다. 이 업적으로 알파폴드 개발진과 단백질 설계 연구자들이 2024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AI 기반 단백질 설계는 크게 세 가지 방식으로 발전하고 있다. 하나는 물리 법칙을 활용해 에너지를 계산하는 전통적인 방법, 또 하나는 최신 AI 모델을 이용해 구조부터 서열을 동시에 설계하는 방법, 마지막으로는 언어 모델을 활용해 새로운 단백질 서열을 만들어내는 방식이다. 최근에는 ProGen3와 ESM-3 같은 초대형 AI 모델이 수십억 개 단백질 정보를 학습해 조건에 맞는 단백질을 뽑아내는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

실험·산업 현장으로 이어지는 성과

실험 방식도 달라지고 있다. 과거에는 수만 개 단백질 후보를 하나씩 시험해야 했지만, 지금은 AI 덕분에 후보를 수십 개 이내로 줄일 수 있다. 또 ‘EVOLVEpro’라는 기술은 적은 실험 데이터만으로 단백질 기능을 크게 향상시켰고, 일부 기업은 연구자가 설계한 단백질을 업로드하면 3주 안에 실험 결과를 돌려주는 서비스도 내놨다.

이 기술은 실제 활용 단계로도 빠르게 이어지고 있다. 뱀독을 중화하는 단백질, 면역 신호 물질을 모방한 단백질, 암세포를 겨냥하는 단백질 등이 개발됐고, 암 표적을 찾는 센서, 합성 마약 검출 센서, 스트레스 호르몬 코르티솔을 초정밀 감지하는 센서도 등장했다. 나아가 조직 재생을 돕는 단백질, 나노구멍(나노포어) 구조, 정교한 단백질 케이지까지 만들어내며 바이오소재 분야에서도 성과를 내고 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첨단 AI 기법들도 있다. 예를 들어 ‘RF디퓨전(RFdiffusion)’은 마치 그림을 점점 완성하듯, 무작위 상태에서 점차 단백질 구조를 그려나가는 기술이다. ‘ProteinMPNN’은 이렇게 만들어진 단백질이 실제로 안정적으로 접히는지를 검증해 준다. ‘BindCraft’라는 도구는 원하는 표적 단백질에 꼭 맞는 맞춤형 결합 단백질을 설계할 수 있으며, ‘ProtGPT’는 기존 단백질과 전혀 닮지 않은 완전히 새로운 단백질을 만들어내는 데 쓰인다.

이러한 기술 덕분에 연구자들은 이제 단백질을 ‘예측’하는 수준을 넘어, 원하는 성질을 가진 단백질을 ‘창조’하는 단계로 나아가고 있다.

국내 기업들의 도전과 과제

이러한 가운데 국내 기업들도 단백질 디자인 분야에 뛰어들고 있다.

삼성물산·삼성바이오로직스·삼성바이오에피스가 함께 설립한 삼성 라이프사이언스 펀드는 2024년 말 미국의 단백질 설계 기업 ‘제너레이트 바이오메디슨스(Generate Biomedicines)’에 전략적 투자를 단행했다.

제너레이트의 생성형 AI 플랫폼 ‘크로마(Chroma)’는 원하는 특성을 가진 단백질을 설계할 수 있다. 삼성은 이를 통해 향후 단백질 치료제 개발 및 위탁생산(CMO) 사업 기회를 확보하려는 것으로 알려졌다.

LG AI 연구소는 올해 초 서울대학교 연구팀과 협약을 맺고 단백질이 환경에 따라 여러 구조 상태로 변하는 현상을 예측할 수 있는 AI 모델 개발에 착수했다.

LG AI 연구소는 미국의 비영리 연구기관 잭슨랩(JAX)과도 공동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알츠하이머와 암 진단·치료에 활용할 수 있는 예측 AI 기술 공동 연구다.

카카오브레인은 2023년 단백질 구조 예측 프레임워크 ‘솔벤트(Solvent)’를 공개했다. 이 기술은 기존 모델과 달리 다중서열정렬(MSA) 없이 단일 서열로 구조를 예측할 수 있어 계산 자원이 적게 든다. 덕분에 새로운 단백질이나 기존에 연구가 부족한 희귀 단백질 구조를 빠르게 예측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보고서는 “과거에는 기술 선두 그룹에서도 수만 개의 후보를 대상으로 스크리닝 실험을 거쳐야 최종 후보를 선별할 수 있었으나, 현재는 인공지능 모델의 발전으로 후보군을 수십 개 이내로 압축할 수 있다”며, “향상된 성공률로 인해 대규모 라이브러리를 활용한 스크리닝 의존도가 줄고, 소규모 테스트 세트 내에서 즉시 활성 검증 단계로 전환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보고서는 이어 “성공률 증가는 비용 절감과 개발 시간 단축으로 이어져, 보다 많은 연구 그룹이 소규모 예산으로도 단백질 개발을 시도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다”고 분석했다.

남은 과제와 윤리에 대한 고민

다만 한계도 지적됐다. 보고서는 “단백질 안정화나 결합 단백질 구현은 성공률이 크게 향상되었으나, 효소 설계처럼 높은 정밀도나 다단계 메커니즘을 요구하는 기능성 설계는 여전히 어려움이 있다”며 “효소·복합 기능 단백질 검증을 위한 맞춤형 실험 시스템 개발이 필요하며, 이는 첨단 실험 기법과의 융합이 요구된다”고 설명했다.

윤리와 안전성에 대한 우려도 있다. 올해 초 워싱턴 D.C.에서 개최된 바이오 디자인 인 포커스(Biodesign in Focus) 및 리스폰시블 바이오디자인(Responsible Biodesign) 워크숍은 AI 단백질 설계가 가져올 혜택과 위험에 대해 논의했다.

워크숍에서 발표한 공동 성명과 권고안은 AI 실험 데이터를 투명하게 공유 하면서도 AI탄력성을 갖춘 합성 DNA 검사 체계 구축, 디자인 도구의 위험 편익 평가 및 과학자와 정책입안자 간 지속적 협의체를 마련할 것을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