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컬투데이=김미경 기자] 건강보험 재정에 적신호가 켜진 상황에서 정부가 내년도 건강보험 국고지원 비율을 오히려 줄이기로 하자, 보건의료 단체 노동조합이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수십 년간 정부가 법정 지원율을 지키지 않아 쌓인 미지급액이 이미 30조원을 넘긴 상황에서, 이번 정부의 결정이 서민과 노동자에게 부담을 떠넘기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는 지적이다.

의료민영화저지와무상의료실현을위한운동본부와 국민건강보험노동조합은 16일 기자회견을 열고 “이재명 정부가 내년도 건강보험 국고지원 비율을 14.2%로 책정하며 전년보다 0.2% 줄였다”며 “이는 헌법 제34조 제2항이 명시한 ‘사회보장·사회복지 증진 의무’를 위배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건보노조는 이명박 정부 16.4%, 박근혜 정부 15.3%, 문재인 정부 13.74%, 윤석열 정부 14%로 줄어든 국고 지원율을 언급하며 “역대 정부 모두 재정 위기를 경고하면서도 국고지원을 지속해서 축소해 왔는데, 이재명 정부는 여기서 더 줄이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오래전부터 건강보험 재정이 위기를 맞을 것이라고 하면서도 모순되게도 역대 정부 모두 국고지원을 계속 줄여왔고, 이는 헌법 조항에 위반된다는 설명이다.

국회 예산정책처가 지난 4월 발표한 ‘의료 개혁과 비상 진료 대책을 반영한 건강보험 재정 전망 추계’에 따르면 인구 고령화와 만성질환 증가로 건보 재정이 2026년 적자로 전환되고 2030년에는 누적 준비금이 소진되어 향후 10년간 누적 적자가 32조2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예측됐다.

이에 보고서는 건강보험 국고지원 확대가 불가피하다고 결론 내린 바 있다.

반면 일부 언론들이 건보 재정 적자로 인해 미래 세대 부담이 증가한다며 보험료 인상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데 대해 노조는 “현행 건강보험제도가 변치 않을 것을 가정한 채, 세대 간 이간질을 부추기는 것은 부도덕하다”며 “현행 건강보험제도는 건강보험료 부담을 불평등하게 지우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우선 노조는 “정부는 경제성장률·물가상승률 등은 배제하고 보험료 인상률만 반영하는 식으로 예상 수입을 축소해 국고 지원율 20%를 고의로 지키지 않았다”며 “그 결과 누적 미지급액이 30조원을 넘는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국민주권정부’라는 이재명 정부는 법정 국고 지원율을 제대로 준수하는 것을 넘어 이제라도 비슷한 제도를 가진 일본 29%, 대만 36% 수준으로 지원율을 대폭 상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조는 노동자와 서민들의 부담이 너무 크다는 점도 지적했다.

NHS 제도를 가진 4개국을 제외한 OECD 32개국 중 17개국이 기업주 부담 비율을 더 높게 책정하고 있음에도 한국은 노사가 반반씩 부담하는 구조다.

이는 경제 수준이 상대적으로 낮은 체코·코스타리카·슬로바키아보다도 더 후퇴한 상황으로, 기업주 부담이 더 큰 17개국처럼 기업주가 더 많이 부담하게 제도를 개혁해야 한다는 게 노조의 설명이다.

현행 보험료 상한제 때문에 일정 소득 이상의 부유층은 소득이 비례해 보험료를 부과하지 않고 훨씬 더 적은 비율의 보험료를 낸다는 점도 꼬집었다.

노조는 “이는 소득에 따라 일정 비율을 꼬박꼬박 내는 평범한 노동자·서민들에 비해 부자들에게 엄청난 특혜를 주는 것”이라며 “보험료 부과가 누적적이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이 상한선은 없애야 하며, 이러한 제도 개혁도 국가의 몫”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내년도 보험료율이 1.48% 인상됐음에도 국고 지원율은 오히려 축소됐음을 문제 삼으며, “보험료율이 올랐다면, 국고 지원율도 같은 비율로 인상하는 게 당연한데 오히려 줄었다는 것은 정부가 국고지원을 줄이는 대신 의료 AI, 바이오헬스 R&D 등 의료산업 예산을 대폭 증액했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내년도 의료 AI 예산은 838억원, 바이오헬스 R&D는 1374억원 늘어 역대 최대 규모인 1조1000억원 이상으로 편성됐다.

또한 민간기업이 건강보험공단의 민감한 개인 의료정보를 활용할 수 있게 하는 ‘의료데이터 구축·활용 지원금’까지 증액된 상황이다.

노조는 “이재명 정부가 우선순위를 민간 의료산업의 이윤 증진에 두지 않고서야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며 “기회 있을 때마다 국민 주권을 외치는 ‘국민주권정부’가 소수 의료산업 기업주들의 이윤을 위해 국민의 건강 보장을 후순위에 두어서야 ‘국민주권정부’라고 할 수 있겠냐”고 지적했다.

이어 “이재명 정부는 여당이 압도 다수인 국회는 예산 심사에서 의료 AI, 바이오헬스 산업 육성과 같은 의료 영리화·산업 예산을 대폭 감액하고, 건강보험 지원 예산을 대폭 증액해야 한다”며 “복지부를 ‘보건산업부’라고 부른 윤석열 정부보다 낫기 위해서는 그렇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조는 끝으로 “정부는 건강보험 보장성을 확대하겠다고 했는데, 국고지원을 줄여서 어떻게 보장성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냐”며 “역대 정부들과 다르게 헌법상 사회보장·사회복지의 증진 의무를 다할 것”을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