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코리아뉴스 / 이창용] 응급실에서 단 30분 만에 패혈증 위험 환자를 조기에 가려낼 수 있는 인공지능(AI) 혈액검사가 기존 검사보다 훨씬 정확하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미국 스탠퍼드대학교와 하버드의대 등 국제 공동연구팀의 연구 결과다.

패혈증은 감염이 심해 몸의 방어 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서 장기 기능이 떨어지는 위험한 병이다. 따라서 응급실에 처음 내원하는 환자는 세균 감염인지, 바이러스 감염인지, 혹은 비감염성 질환인지를 빠르게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까지는 주로 C-반응성 단백(CRP), 프로칼시토닌(PCT), 백혈구 수치 같은 혈액검사나 환자의 증상과 활력징후를 종합한 qSOFA 점수 등을 이용해 판단했다.

그러나 이런 검사들은 정확도가 떨어지거나 결과를 확인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 이에 의료진은 치료 시기를 놓치지 않기 위해 감염이 아닌 환자에게까지 항생제를 처방하는 일이 있다.

AI 혈액검사 ‘트라이버리티’, 기존 진단법보다 정확

연구팀은 미국과 유럽 22개 응급실에 내원한 환자 1120명을 대상으로 인플라마틱스(Inammatix)가 개발한 AI 기반 혈액검사 ‘트라이버리티(TriVerity)’가 세균·바이러스 감염 여부와 질병의 중증도를 얼마나 빠르게 판별하고 패혈증 진단에 얼마나 도움을 주는지 평가했다.

그 결과, 세균 감염 진단의 곡선하면적(AUROC)은 0.83으로, 기존의 프로칼시토닌(0.71), CRP(0.74), 백혈구 수(0.76)보다 높았다. 바이러스 감염 진단에서는 AUROC 0.91로 더욱 뛰어났고, 질병의 중증도를 예측하는 점수는 AUROC 0.78을 보였다.

AUROC은 검사 결과가 실제 환자 상태를 얼마나 잘 구분하는지를 나타내는 지표다. 1에 가까울수록 정확도가 높다는 뜻이다.

더불어 ‘감염 있음’을 의미하는 특이도는 92% 이상, ‘감염 없음’을 의미하는 민감도는 95% 이상이었다. 특히 트라이버리티는 인종에 따라 정확도가 떨어지지 않았다. 프로칼시토닌 검사가 흑인이나 비백인 환자에게서 정확도가 낮은 것으로 알려진 반면, 트라이버리티는 백인·흑인·기타 인종 모두에서 유사하거나 더 높은 성능을 보였다.

검사 시간이 짧은 것도 장점이다. 트라이버리티 검사는 전용 장비인 ‘마이르나(Myrna)’에서 약 30분 만에 결과가 나오는데, 의료진의 직접 조작 시간은 1분도 채 걸리지 않는다.

다만 이번 연구는 한계도 있다. 감염 여부를 완전히 확인하려면 혈액 배양이나 PCR처럼 병원균 겸사를 하는 방법이 가장 확실하다. 그러나 이런 검사는 결과가 늦게 나오고, 응급실에 온 모든 환자에게 시행하기도 어렵다. 실제로 이번 연구에 참여한 환자 1120명 중 일부만이 병원균 검사를 받았다.

연구팀은 대안으로, 환자의 증상·염증 수치·영상 검사 등을 모두 종합해 내린 의료진의 최종 판단(임상 판정)을 기준삼아 연구를 진행했다. 여기서 환자의 증상·염증 수치·영상 검사 등은 세균이나 바이러스 자체를 찾는 ‘병원균 검사’가 아니지만 감염 여부를 판단할 때 참고하는 주요 단서로 활용됐다.

다시 말해 이번 연구는 실제 병원균 검사가 아닌, 여러 자료를 종합해 내린 감염 진단과 얼마나 일치했는가를 평가했다는 점이 한계로 지적된다.

연구팀은 “트라이버리티가 응급실에서 감염 환자를 빠르게 구분하고, 항생제가 실제로 필요한 환자를 선별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며, “이로써 불필요한 항생제 사용을 줄이고 내성균 문제를 완화하는 데도 기여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 검사가 실제 진료 현장에서 얼마나 치료 결정에 도움이 되는지를 확인하려면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며, 관련 임상시험이 이미 진행 중”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트라이버리티는 지난 1월 FDA 승인을 획득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이후 9월 의료 학술지 ‘네이처 메디신(Nature Medicine)’에 게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