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코리아뉴스 / 이충만] 희귀 질환의 희망으로 떠올랐던 유전자 치료제가 천문학적인 비용 때문에 접근성이 떨어지면서 다시 항체 치료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같은 흐름은 관련 임상시험 사례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헬스코리아뉴스 취재 결과, 미국 CSL 베링(CSL Behring)은 최근 겸상 적혈구병(SCD)에서 자사의 ‘아누미길리맙(anumigilimab)’을 평가하는 2상 임상시험 준비를 모두 완료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상 질환인 SCD는 적혈구의 모양이 낫 모양으로 변형되어 산소 결합력이 감소하고 혈류에 영향을 주는 희귀 질환이다. ‘낫모양 적혈구빈혈증’이라고도 불린다. 그간 SCD에 대한 뚜렷한 치료제는 없었고, 환자는 빈혈 증상을 해결하기 위해 정기적인 수혈을 받아야 했다.

이러한 가운데 등장한 치료제가 바로 유전자 편집 치료제 ‘카스거비(Casgevy, 성분명: 엑사감글로진 오토템셀·exagamglogene autotemcel)’다. 환자의 조혈모세포를 수집하여 헤모글로빈의 생성을 촉진하도록 DNA를 편집하고, 다시 환자에게 투약하는 방식이다.

영국 의약품건강관리제품규제청(MHRA)은 2023년 11월 16일(현지시간) 세계 최초로 ‘카스거비’를 품목허가한 바 있다. 이어 미국 식품의약국(FDA)도 그해 12월 8일(현지 시간) 이 약물을 승인했다.

이론적으로 ‘카스거비’는 SCD를 1회 투약으로 완치할 수 있는 치료제다. 이에 따라 업계는 ‘카스거비’가 허가를 받았을 때, 희귀 질환에 대한 치료 패러다임이 크게 바뀔 것이라는 기대를 품었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카스거비’의 매출은 실망감 그 자체였다. 2024년 매출은 고작 1000만 달러(한화 약 146억 원)에 그쳤다. 우리 돈 약 145억 원으로, 웬만한 복제약만도 못한 수준이다. 1회 투약 비용이 220만 달러(한화 약 32억 원)인 점을 고려하면, 2024년 판매량은 겨우 5건에 불과했던 셈이다. [아래 관련기사 참조]

이는 유전자 치료제가 환자 맞춤형이기 때문이다. 환자 맞춤형 유전자 치료제는 아직 대량 생산이 불가능하다. 유전자 치료제를 개발한 기업들은 연구개발(R&D)과 제조 등에 들어간 비용을 회수하기 위해 치료 단가를 천문학적으로 책정할 수밖에 없다. 환자들의 접근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업계가 항체 치료법으로 다시 눈을 돌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번에 CSL 베링이 2상에서 평가하는 ‘아누미길리맙’ 역시 항체 치료제 후보물질이다. 면역세포의 생성을 촉진하는 과립구 집락 자극 인자 수용체(G-CSFR)를 저해하여 체내 헤모글로빈 수치를 높이는 기전이다.

공교롭게도 CSL 베링은 당초 유전자 치료제 개발에 특화된 기업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러한 업체조차 항체 치료제로 눈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

항체 치료법으로 모색되는 희귀 질환은 SCD뿐만 아니다. 뒤센 근이영양증(DMD)과 베타 지중해 빈혈(TDT)에서도 항체 치료법이 주목받고 있다. 미국 플리언트(Pliant)는 올해 6월 ITGA7 표적 항체 치료제 후보물질 ‘PLN-101325’의 1상에, 중국 맙웰(Mabwell)은 올해 8월 TMPRSS6 표적 항체 치료제 후보물질 ‘9MW-3011’ 2상에 각각 착수한 바 있다.

기업들이 항체 치료제로 관심을 돌리는 사례는 앞으로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업계 관계자는 “유전자 치료제는 한 번의 투약으로 희귀 질환을 완치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혁신적 치료법”이라며,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정부 차원의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