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신문·일간보사=김정일 기자]양자컴퓨팅이 제약바이오 분야 신약개발의 패러다임을 바꿀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됐다.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정재호 교수는 생명공학정책연구센터 'BioINpro'에 실린 '양자컴퓨팅 기반 신약개발 개요 및 연구 동향' 보고서를 통해 이같이 밝혔다.

정재호 교수는 "양자컴퓨팅 기술은 아직 초기 단계에 있지만, 신약개발 분야에서 빠르게 주목받고 있다"며 "최근 몇 년간 AI가 단백질 구조 예측과 분자 생성에서 눈부신 성과를 거두었듯, 양자컴퓨팅도 복잡한 생물학적 문제를 해결하는 새로운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양자워크는 기존 방법이 놓치던 네트워크 깊은 영역에서 질병 표적을 찾아내며, 양자 시뮬레이션(VQE(Variational Quantum Eigensolver), QAOA(Quantum Approximate Optimization Algorithm))은 제1원리 계산으로 단백질-리간드와 같은 분자 결합 에너지를 정밀하게 계산함으로서 더 가능성 높은 유효물질(hit)을 발견하고 생성한다.

또한 QCBM(Quantum Circuit Born Machine)은 고전적 생성형 AI가 탐색하지 못하는 화학공간에서 새로운 선도물질 후보 분자를 제시하고, QML(Quantum Machine Learning)은 희귀 데이터에서도 뛰어난 예측력을 보이며, 임상시험 설계 과정에서 복잡한 상호의존성이 있는 변수들을 분석하여 환자군의 분류를 최적화할 가능성을 보여준다.

보고서는 이러한 성과들은 아직 제한적인 규모에서 나온 것이지만, 실제 후보물질 합성과 생물학적 검증으로 이어진 사례도 등장하기 시작했다며 이는 양자컴퓨팅이 단순히 이론적 가능성이 아니라 실질적인 신약개발 도구로 성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정재호 교수는 현재 양자 하드웨어의 불안정성, 알고리즘 최적화, 해석 가능성 확보 등 넘어야 할 과제는 많다면서도 과거 AI가 단백질 구조 예측에서 '불가능해 보였던 성과'를 단 몇 년 만에 현실로 만든 것처럼, 양자컴퓨팅도 머지않아 신약개발 전 과정을 바꿔놓을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전통적인 신약개발이 실험 데이터 분석에 기반한 경험 주도적 과정이었다면, 현재는 AI를 활용해 대규모 실험데이터에서 패턴을 찾는 상관관계 기반 신약개발이 광범위하게 적용되고 있다. 반면 양자 기반 신약개발은 자연이 의도한 대로 분자 시뮬레이션을 통해 컴퓨터 내에서 '화학적 정확도'로 분자 에너지를 계산한다.

즉 과거 데이터에 의존하지 않고도 제1원리(ab initio)에서 기저 물리 법칙을 시뮬레이션해 결과를 예측할 수 있다. 이는 양자 컴퓨팅이 데이터가 존재하지 않는 분자와 표적을 탐색할 수 있음을 의미하며 현재 AI의 단점인 편향되거나 불완전한 데이터셋에 대한 의존성을 탈피해 화학적으로 매우 정확한 '제1원리' 데이터를 생성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정 교수는 "장기적으로 현재의 '선별 후 확인' 모델에서 '설계 후 검증' 모델로의 전환을 가속화함으로써 높은 신뢰도의 약물 분자들이 컴퓨터 내에서 설계되고 실험실의 역할은 광범위한 추측적 선별이 아닌 최종 검증으로 전환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앞으로의 연구는 양자AI/고전 하이브리드 모델을 어떻게 설계하고, 실제 임상과 연계된 검증 과정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에 집중해야 한다"며 "국내에서도 양자 기반 병렬형 신약개발 플랫폼을 구축하려는 노력이 시작된 만큼, 이러한 국제적 흐름과 보조를 맞춰 나간다면 한국 역시 양자 신약개발 혁신의 중요한 축을 담당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재호 교수는 "양자컴퓨팅은 표적 발굴에서 분자 생성, 예측, 시뮬레이션까지 전주기를 아우르는 새로운 신약개발의 언어가 될 가능성이 크다"며 "이는 제약·바이오 산업의 패러다임 전환을 예고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