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코리아뉴스 / 이창용] 인공지능(AI) 기술이 임상시험의 최대 지연 요인으로 꼽혀 온 환자 모집 문제를 빠르게 해결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임상시험에서 환자 모집은 가장 큰 병목 지점이다. 전체 시험 지연 가운데 약 80%가 환자 등록 문제에서 발생하는데, 이는 신약 개발에 시간이 오래 걸리는 주요 원인 중 하나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보산진)이 최근 발간한 ‘글로벌바이오헬스산업’ 보고서에 따르면 ‘인공지능 기반 환자 매칭 엔진’은 이러한 환자 등록 문제를 크게 개선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AI 매칭 엔진은 병원·클리닉·검사기관 등에 있는 전자건강기록(EHR)을 분석해 특정 임상시험 기준에 적합한 환자를 찾아내는 엔진이다. 미국의 정밀의료 기업 템퍼스(Tempus)는 지난 2024년 이 같은 AI 매칭 엔진을 써서 암 임상시험 적격 후보지를 기존 대비 50% 빠르게 찾았다고 밝힌 바 있다.

미국 국립보건원(NIH)은 임상시험 대상자를 찾는 프로세스를 더 빠르게 만들기 위해 TrialGPT를 개발했다. TrialGPT는 GPT 기술을 활용하여 환자 의료 정보를 분석, 적합한 임상시험을 빠르게 찾아내는 인공지능 모델이다.

AI 매칭 엔진은 이같이 임상시험 대상을 빨리 찾는 것뿐만 아니라 더 다양한 환자를 찾는 데에도 이바지할 수 있다. 그동안 대형 병원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임상시험은 농촌 지역, 의료 취약 지역, 이동이 어려운 고령층 환자 등이 참여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AI 매칭 기술은 환자 전자건강기록만 확보하면 거리를 뛰어넘어 적합한 환자를 찾을 수 있다. 병원 방문이 어려운 환자도 임상시험 기회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제약회사 경쟁력 강화에 큰 도움

제약회사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도 큰 의미를 지닌 것이 AI 매칭 엔진이다. AI 매칭 엔진으로 환자 모집 기간이 줄어들면 임상에 필요한 시간 역시 줄일 수 있다. 이는 곧 경쟁사보다 먼저 시장에 진입할 수 있음을 뜻한다.

글로벌 제약 기업들이 AI 기업들과 연이어 협력 파트너십을 체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최근 독일 제약·생명과학 기업 바이엘 AG(Bayer AG)는 임상시험 기간을 줄이기 위해 미국 의료 데이터·분석 기업 콘서트 AI(Concert AI)와 다년 계약을 맺었다.

미국 AI 기반 임상개발 플랫폼 기업 페이스 V(Phase V)와 글로벌 CRO(임상시험수탁기관) 기업 바이오포럼(Bioforum)도 임상시험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전략적 파트너십 계약을 체결했다.

다만, 해결해야 할 과제 역시 남았다. HIPAA(미국의 건강보험 이동성 및 책임에 관한 법)이나 GDPR(유럽의 일반 데이터 보호 규정)같은 엄격한 규제는 나라와 나라가 데이터를 교환할 때나, 여러 기관이 협력할 때 맞닥뜨리는 장벽이 될 수 있다. EU의 인공지능 법(EU AI Act)이 의료 분야 AI를 ‘고위험군’으로 규정한 만큼 규제 준수를 위한 시스템 비용 역시 늘어날 전망이다.

그럼에도 AI 매칭 엔진은 임상시험 혁신의 중심 기술로 자리 잡을 것으로 보인다. 임상시험의 첫 관문이자 가장 큰 난제로 꼽혀 온 환자 모집 과정을 단축할 있기 때문이다.

보고서는 “환자 모집 및 유지 분야는 2024년 AI 임상시험 시장에서 가장 높은 점유율을 차지했다”며, “2025년에는 32.7%의 점유율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