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코리아뉴스 / 이충만] 피하주사(SC) 제형이 항체 의약품의 특허 만료로 인한 복제약 방어 전략의 대세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항체 의약품은 우리 몸의 면역계에서 자연적으로 만들어지는 항체를 기반으로 재조합된 생물학적 제제다.

이 약물의 가장 큰 장점은 질병의 특정 타깃에 강력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1998년 스위스 로슈(Roche)가 개발한 HER2(인간 상피세포 성장인자 수용체2) 표적 유방암 치료제 ‘허셉틴’(Herceptin, 성분명 트라스투주맙)은 이러한 특성을 바탕으로 질병 치료의 패러다임을 바꾼 대표적 약물이다.

다만, ‘허셉틴’을 비롯한 항체 의약품은 분자 구조가 커서 정맥에 직접 주입하지 않는 이상 체내 흡수가 어렵다. 그래서 선택한 투약 방법이 약물을 혈관에 직접 주입하는 정맥주사(IV) 제형이었다.

그러나 사상 최초의 항체 의약품인 ‘허셉틴’이 2014년 특허 만료를 앞두고 복제약의 공습이 예고되자 로슈는 이에 대한 방어 전략으로 피하주사 제형 개발에 나섰다.

피하주사는 1~2시간씩 걸리는 정맥주사와 달리 단 몇 분만에 투약을 완료할 수 있어 환자의 투약 편의성이 높다는 특징이 있다. 무엇보다 체내 흡수 문제를 해결한 것이 피하주사 제형 개발의 결정적 배경이 되었다.

피하주사 제형은 기존 약물에 히알루로니다아제 효소를 결합한 것이다. 기업마다 기술적 차이는 있지만 히알루로니다아제는 피하 조직의 히알루론산을 분해하는 기능으로, 피하 조직 사이의 간격을 넓혀 약물이 빠르고 고르게 퍼질 수 있도록 한다.

때문에 현재까지도 시장에서 ‘허셉틴’의 영향력은 여전한 편이다. 2024년 매출은 17억 달러(한화 약 2조 5000억 원)에 달했다. 2013년 최고 매출액인 68억 달러(한화 약 10조 원)보다는 감소했지만 출시된지 20년이 넘은 약물치고는 놀라운 수준이다.

이는 미국 얀센(Janssen)의 자가면역질환 치료제 ‘레미케이드’(Remicade, 성분명: 인플릭시맙·infliximab)와 대비된다. ‘레미케이드’는 2012년 약 90억 달러(한화 약 13조 2200억 원)의 최고 매출액을 기록했으나, 2024년 16억 달러(한화 약 2조 3500억 원)로 쪼드라들었다. 셀트리온의 ‘램시마’같은 바이오시밀러가 대거 출시된 상황에서 복제약의 공습을 방어할만한 피하주사 제형이 따로 없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피하주사 제형의 전략적 가치가 입증됨에 따라 최근 기업들은 이를 단순한 복제약 대응책이 아니라 정맥주사 제형과 병행한 시장 확대 전략으로도 적극 활용하고 있다.

‘레미케이드’로 큰 타격을 경험했던 얀센이 자사의 이중특이성 항체 ‘리브리반트’(Rybrevant, 성분명: 아미반타맙·amivantamab)의 허가를 기존 정맥주사에서 피하주사 제형까지 확대 추진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이다.

피하주사 제형 기술 보유 기업 폭풍 성장

피하주사 제형이 업계의 새로운 전략으로 부상하면서 미국의 할로자임(Halozyme)같은 기업은 덩달아 수혜를 받고 있다. 이 회사는 자사의 피하주사 약물 전달 기술인 ENHANZE를 바탕으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허셉틴’ 피하주사 제형 역시 ENHANZE 기술이 적용된 것이다.

‘허셉틴’ 외에도 일본 오노약품공업의 면역항암제 ‘옵디보’(Opdivo, 성분명: 니볼루맙·nivolumab), 얀센의 다발성 골수종 치료제 ‘다잘렉스’(Darzalex, 성분명: 다라투무맙·daratumumab) 등 9개 항체 약물이 이 기술의 적용을 통해 탄생했다.

할로자임은 지난 3일(현지 시간) 2025년 3분기 실적 발표회에서, 2025년 총 매출액을 전년(10억 달러) 대비 약 30% 증가한 13억 달러(한화 약 1조 9000억 원)로 추산했다.

이 가운데 ENHANZE 기술을 통한 로열티 수익만 약 8억 달러(한화 약 1조 70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 신기술 하나만으로도 블록버스터 의약품에 못지않은 수익을 거둘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한 것이다.

국내 기업 중 피하주사 제형 특화 기업으로 부상하고 있는 곳은 알테오젠이다. 이 회사는 미국 MSD의 면역항암제 ‘키트루다’(Keytruda, 성분명: 펨브롤리주맙·pembrolizumab) 일본 다이이찌산쿄 및 영국 아스트라제네카(Astrazeneca)의 ADC(항체약물접합체) 항암제 ‘엔허투’(Enhertu, 성분명: 트라스투주맙 데룩스테칸·trastuzumab deruxtecan)에 자사의 피하주사 제형 기술 ALT-B4를 적용하는 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