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신문·일간보사=김영주 기자]

산업의 현재는 정책과 제도의 산물

제약바이오산업의 오늘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수십 년간 쌓여온 정책의 방향, 제도의 격자, 정부의 의지와 실수, 그 모든 것의 산물이다. 산업이 잘되면 민관협력의 성취라 하고 산업이 흔들리면 기업 탓을 한다. 그러나 한 가지 진실만큼은 변하지 않는다. 산업의 현재는 정책이 만들고 제도는 그 산업이 어디로 갈지의 괘도를 그린다.

그래서 약가제도 개편은 늘 민감하다. 왜냐하면 약가제도는 제약산업을 살릴 수도, 무너뜨릴 수도 있는 '시장의 룰'이기 때문이다. 약가제도는 행정문서가 아니다. 그 자체로 시장을 움직이는 가격의 헌법이며 투자와 설비, 인력과 품질, 기업의 생존과 혁신 전략을 결정짓는 게임의 규칙이다.

정부는 지금 그 룰을 뒤흔드는 전면 개편안을 내놓았다. 취지는 화려하다. 혁신 보상, 필수의약품 안정화, 합리적 약가관리. 그러나 정작 내용을 들여다보면 '진단은 옳은데 치료는 틀리는' 우리 행정의 오래된 악습이 또다시 반복되고 있다.

진단은 암인데 처방은 고혈압약

의사가 암환자에게 고혈압약을 처방한다면 어떻게 될까. 증상 완화는커녕, 환자는 더 빨리 죽음으로 내몰릴 것이다. 정부의 이번 약가제도 개편안이 바로 그렇다. 시장 구조의 적폐를 바로잡겠다는 진단은 맞다. 그러나 꺼내든 처방은 13년 전과 똑같다."일괄 약가인하"라는 효과 없는 고혈압약을 또 다시 암환자에게 투여하려는 것이다.

2012년에도 정부의 고위 관료는 "제네릭의 난립을 막고 옥석을 가리겠다"고 했다. 2025년에도 "시장 구조를 재편해 혁신 생태계를 구축하겠다"고 한다. 그렇다면 질문은 단 하나다. "도대체 13년 동안 무엇을 했는가?", "왜 옥석은 여전히 가려지지 않았는가?" 이 질문에 정부는 답할 수 있어야 한다.

2012년 일괄 약가인하로 다 죽는다 했는데, 죽었는가?

고혈압약 먹고 죽을 뻔했다. 당시에도 산업은 아우성쳤다. "다 죽는다." "생태계 붕괴된다."

정부는 "필요한 구조조정"이라고 답했다. 결과는 무엇이었나? 죽지는 않았다. 그러나 죽을 뻔했다. 소위 혁신형 기업들이 가장 먼저 R&D 속도를 늦추었고, 삼류 영업 중심 기업들은 휘청였고, 내수 중심 중소제약사들은 구조적 경쟁력 상실을 그대로 떠안았다.

무엇보다도 일괄 약가인하는 시장을 혁신으로 이끄는 대신 "저가 경쟁 → 품질 흔들림 → 공급 차질"의 고리를 강화했다. 암환자에게 고혈압약을 처방한 결과는 환자가 죽지 않았다는 사실이 아니라 환자를 수년간 병상에 눕혀 놓았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다.

정부의 처방은 왜 늘 빗나가는가

정부의 진단은 대체로 옳다. 제네릭 난립은 해결해야 한다. 좀비기업을 솎아내야 한다. 혁신 생태계를 강화해야 한다. 그러나 문제는 늘 처방이다. 옥석을 가리겠다면서, 또 다시 옥과 돌을 함께 분쇄하는 해머(hammer) 정책을 들고 나온다. 정부는 2012년에도 옥석을 가리겠다고 했다. 2025년에도 옥석을 가리겠다고 한다. 그 말은 곧 "2012년 정책은 옥석을 가리지 못했다는 고백"이다. 그런데도 동일한 처방을 반복한다는 것은 정책 실패를 인정하면서 또 같은 실패를 반복하는 셈이다. 이것만큼 위험한 행정은 없다.

옥, 돌, 모래… 시장을 떠받치는 층위를 정부는 알고 있는가. 제약바이오 시장은 단순하지 않다. R&D에 매진하는 옥 같은 기업이 있고, 제네릭 생산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돌 같은 기업이 있으며, 심지어 생산시설도 없이 업(業)을 영위하는 모래 같은 좀비기업도 있다. 문제는 이 셋이 겹겹이 얽혀 산업 생태계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들을 한 번에 쓸어내는 일괄적 약가인하는 모래만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옥과 돌까지 함께 쪼개버린다.

이건 내 개인의 판단이 아니다. 얼마 전 저녁 자리에서 만난, 2012년 일괄 약가인하의 충격을 온몸으로 맞았던 보험약가 담당자 세 명의 한결같은 평가다. 그들의 말은 단 한 줄로 요약된다. "정부야, 제발 다른 방법을 찾아보자."

정부의 헛발질 시즌 2를 막기 위해

기자는 40년 가까이 이 산업을 지켜보며 배우고, 때로는 충돌하고, 때로는 함께 싸웠다. 그러나 지금처럼 산업의 본질을 외면한 채 정책이 똑같은 오류를 반복하는 장면을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이번 개편안은 최악이다. 이유는 단 하나. "정부가 옳은 진단을 하고도 틀린 처방을 반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약가제도 개편이 필요하다는 데 반대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그 개편은 반드시 정치적 손쉬움이 아니라 산업의 현실을 반영한 정교한 전략이어야 한다. 암환자에게 고혈압약을 주는 정책, 옥석을 가린다며 옥과 돌을 동시에 분쇄하는 정책, 이런 정책은 더 이상 국민건강과 산업의 미래를 지탱할 수 없다. 정부에 거창한 요구를 하고 싶지 않다. 단 하나만 부탁드린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말자." 2025년 약가제도 개편안이 2012년의 모순을 되풀이하는 정부의 헛발질 시즌 2가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산업은 정부의 파트너다. 정부가 제도를 세심하게 설계할 때 산업은 성장한다. 정부가 거친 도구를 사용할 때 산업은 붕괴한다. 퇴직하는 기자의 마지막 글이 이 구조적 오류의 반복을 멈추는 데 작은 신호라도 되기를 바란다.이제, 정말로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